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 1

장안동 아빠방 성훈 OlO.9440.0540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6시 반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는 데 믿을 수 없다. 일어나서 대체 무얼 하는 것일까? 베갯머리를 더듬거려 손에 잡힌 책 '베트남에서 온 또 한 명의 마지막 황제'를 꾸벅꾸벅 졸면서 읽었다. 나는 베느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베트남전쟁을 다룬 미국 영화 속 정보랑 보도된 뉴스밖에 모른다. 그렇다 치더라도 백인들은 지독하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내내 그랬다.

 대체 뭐 하는 작자들이람. 잠이 덜 깨서 화가 4분의 1쯤밖에 나지 않은 채 다시 잠들었다. 깨어나니 8시 조금 전이었따. 누워서 와이드쇼를 보았따.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가짜 아리스가와 모 씨가 사기 결혼식을 올렸는데, 배우 이시다 준이치가 영문도 모르고 축의금 5만 엔을 주고 온 모양이다. 갑자기 이시다 아무게가 좋아졌다. 아, 즐겁다. 즐거운 상태로 일어나려고 기운을 냈다. 


 빵이 다 떨어져서 커피숍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걸어서 2분만에 도착했다. 돈만 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다니 도시는 굉장하다. 셀프서비스용 쟁반을 들고 막다른 곳까지 슬슬 걸어갔다. 작은 테이블 딱 한 자리가 비었고, 벽을 따라 테이블이 6개 정도 늘어서 있었따.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벽을 등지고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전부 여자였다. 전부 할머니였다. 그 중 넷은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전부 늦은 아침을 먹는 듯했다.

 전부 홀몸으로 보였다. 예전에 파리 변두리의 식당에서 매일 밤 같은 자리에 앉아 혼자 저녁을 먹는 노파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목을 앞으로 굽힌 채 혼신의 힘을 다해 고기를 썰고, 기이할 정도의 에너지로 고기를 씹어 삼키고 있었다. 나이는 아흔쯤으로 보였다. 녹색 모자를 쓰고 음식에 몰두하며 무언가 못마땅하다는 듯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대로 퍽 하고 고꾸라져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접시가 핥기라도 한 것처럼 깨끗이 비어 있어서 경악했다.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문밖의 빛 속으로 사라진 코트 뒷모습은 고집불통 고독의 덩어리였다. 그대로 저 세상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였다. 과연 육식 인종, 역시 유럽인이다. 그 무렵의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는 할머니들은 파리의 노파를 서서히 닮아간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말쓱한 얼굴에 옷차림도 단정하다. 예쁘게 흰머리를 말아 올린 후반의 어느 할머니는 롱스커트에 커다란 연보랏빛 스카프를 어깨에 걸치고 여유롭게 커피숍을 나갔따. 저 사람은 필시 부유층 샐러리맨 부인이었을 테지. 그 옆의 할머니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밤색으로 물들었다. 검은 바지에 짧은 재킷을 입고 문고본을 읽는 모습이 정년퇴직한 커리어우먼 같다.

 그 옆의 사람은 옛날 영국의 가정교사처럼 보였다. 회색 타이트스커트에 털실로 짠 조끼, 흰색 블라우스의 작고 둥근 옷깃에는 섬세한 레이스가 달려 있고, 이 이음매는 카메오 브로치로 장식했다. 요즘 시대에 카메오 브로치를 다는 사람은 없다. 정말로 추억의 패션이다. 그러나 내 차림새도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청바지에 인도 자수가 놓인 윗도리. 발에는 세이유에서 500엔에 산 샌들을 아무렇게나 꿰어 신었다. 예전에는 이런 할머니가 없었다. 보나 마나 독거노인 냄새가 풀풀나겠지. 내일 이 시간에 오면 다시 같은 얼굴을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도 남들과 대화하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도 없이 기운이 솟아났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아침밥을 먹을지 스스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어슬렁어슬렁 커피숍을 나오자마자 무슨 샌드위치를 먹었는지 까먹었다. 흘끔흘끔 '동지 할머니' 관찰에 열중해서 그런지, 치매에 걸려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대로 휘적휘적 쿄카이도리를 걷는다.

 이곳은 한때 번화한 상점가였지만 지금은 덧없는 북고풍 분위기가 감도는데, 그 적적함이 오히려 아름답다.

 막다른 골목 근처에 닭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있다. 닭 뼈를 발라 판다.

 그래, 이곳에서라면 틀림없이 갓 발라낸 뼈를 살 수 있겠지. 국물을 우려서 냉동해두자. "닭 뼈 주세요." "뼈? 뼈는 없는데." "거기 있잖아요." "이건 전부 예약이 끝났수." "뭐라고요?" "식당에선 우리 집 뼈를 좋아하는 거라고." 각진 얼굴에서 음침한 정열을 풍기는 아저씨가 점점 자랑하는 기색을 비치기 시작했다. 

 "어디 한 번 찾아보쇼. 전부 냉동이지. 세이유든 기노쿠니야든 가보라고" 듣고 보니 그렇다. "한 개도 안 돼요?" "오늘은 끝. 뭐 만들 거요?" "국물을 내려고요." 닭 뼈에 국물 내는 것 말고 어떤 쓰임이 있는지 모르겠다.

 "손님한테 팔게 없는데." 없다고 하니 미련이 남는다. 나는 진열장 속 고기를 구경했다. 번들번들하고 탱탱한 간이 맛있어 보였다. "간 500그램 주세요." 아저씨는 간을 비닐봉지에 싸면서 물었다. "이렇게 많이 사서 뭐 하시게?" "리버 페이스트 만들거에요." "으흠. 한번 만들어보쇼. 다른 데 간이랑 확실히 다를테니깐. 냉동 간으로 만들면 흐물흐물해서....." 아저씨의 음침한 정열은 점점 불타올라서, 한업이 사랑하는 닭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

 아저씨는 잔돈을 건네며 "수요일 아침에, 어디 보자...... 11시 반까지 오면 뼈 한두 개는 줄 수 있겠수. 수요일이오. 수요일" 했다. "수요일, 아침이란 말이죠?" 나는 집까지 "수요일, 아침, 수요일 아침" 하고 되뇌며 돌아왔따. 마치 어릴 적 심부름 같다. 내 지능은 네다섯 살 아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다섯 살 아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다섯 살의 뇌세포는 자라나는 뇌세포다. 반면 내 뇌세포는 떨어져 나가기만 한다. 요즘은 익숙해져서 슬프지도 않다. 

 이제 와 네다섯 살로 되돌아가서 한 번 더 살라고 해도 끔찍하다. 그것만큼은 참아줬으면 좋겠다.



장안동 아빠방(호스트바) 성훈 이력 (OlO.9440.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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