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 2

 

장안동 아빠방 / 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 2 

 자랑은 아니지만, 아니 자랑이지만 내 리버 페이스트는 일품이다. 상점에서 파는 것 따위는 리버 페이스틀가고 할수도 없다. 비법은 쪼르르 따라 넣은 브랜디. 술을 안 마시는 나에게 포도주 같은 걸 들고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전부 남들이 마시고 가니까. 하지만 나폴레옹이라면 환영이다. 아직 요리에 슨 적은 없지만 리버 페이스트에 넣어보고 싶다. 아주 예전에 고급 고시노칸바이(니가타 현에서 생산되는 술)를 요리에 듬뿍 넣었더니 애주가인 남편이 격분했다. 10년도 넘게 되새기며 화를 냈다. 아직도 화가 나 있을 것 같다. 나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술고래는 게걸스럽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리버 페이스트는 장시간 뭉근히 볶은 양파로 단맛을 낸다. 양파를 오래 볶으면 얼마나 달콤해지는지 나는 알고 있따. 한번은 양파 수프를 만들려고 큰 냄비에 네 시간 동안 양파를 볶은 적이 있다. 냄비 가득했던 새하얀 양파는 네 시간이 지나자 주먹 크기의 투명하고 옅은 갈색 덩어리로 변했다. 살짝 집어서 먹어보았더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았다. 흡사 과저였다. 아는 선 채로 전부 먹어치웠다. 양파 일고여덟 개 분량이었다. 나중에 양파 일고여덟 개를 5분 만에 먹었따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따. 수프 재료는 다 먹어버렸다.

 오늘 만든 리버 페이스트는 표면이 지나치게 익어서 거뭇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미미코 씨 집에 반쯤 덜어서 가지고 갔더니, 미미코 씨는 작은 케이크만 한 것을 홀랑 입에 넣고 말했다. "맛있어." "앗..... 아....." 나는 탄식을 내뱉은 후에 중얼거렸다. "그거 빵이나 크래커에 발라 먹지 않으면 몸에 안좋은데." 버터도 꽤 많이 들어갔다. 미미코 씨는 오만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면서도.

 나는 리버 페이스트를 만들 때마다 유유코를 떠올린다. 유유코는 내 친구 애인이었지만 나중에 헤어졌다. 그 친구와 나는 매우 각별해서 유유코와 해외여행도 몇 번이나 함께 갔다. 유유코는 엄청난 요리 달인에다 넛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여자였다. 나는 수제 리버 페이스트를 유유코한테 배웠다. 친구와 유유코가 헤어지네 연을 끊네 하는 통에 내 주위에 대지진이 일어나던 참이었다.

 대지진을 겪으며 이건 안되겠다. 두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유유코는 내 친구 애인이니까 두 사람의 미래가 없어지면 나와 유유코의 인연도 끊어지겠지. 하고 생각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친구와 나는 절대 수상쩍은 관계가 아니었다. 서둘러야 했다. 나는 진도 7정도의 재해를 입은 유유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기, 리버 페이스트 만드는 방법 좀 알려줘." 유유코는 기가 막혔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리버 페이스트 레시피를 알려달라잖아. 사노 씨는 그럼 사람인 거야!"하고 격분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 친구한테 "당신이랑 헤어져서 딱 하나 좋은 점이 있어. 이제 사노 씨랑 안 만나도 된다는 점이야"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까지 리버 페이스트를 만들고 있다.

장안동 아빠방 / 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생비트를 통째로 삶아 따근따끈할 때 버터를 발라 먹는 방법도 유유코한테 배웠다. 비트를 삶은 믿을 수 없이 선명한 진홍색 물은 감동적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유유코가 더욱 화를 내겠지만, 돼지 갈비에 라즈베리 잼을 발라 먹는 요리도 배우고 싶었다. 아는 그런 여자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15년이나 지나버렸다. 늙은 내 위장이 돼지갈비를 소화시킬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

 유유코의 요리는 풍성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쳤고 큼직큼직했다. 유유코의 요리를 보고 깨달았다. 세상에는 대범한 요리와 좀스러운 요리가 있다는 사실을 계량스푼으로 정확하게 제어 만들어도 찔끔찔끔 옹종ㄹ한 맛이 나게 요리하는 사람이 있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맛에 깊이가 없는 요리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내가 어떤 요리를 만드는지는 나도 모른다. 잘할 때와 못할 때의 격차가 커서 나조차도 내가 만든 음식을 입에 넣었다가 뱉어버린 적도 있으니까. 불안정한 인격이 요리에 그대로 반영된 적도 있으니깐, 불안정한 인격이 요리에 그대로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를 화나게 만들긴 했어도 리버 페이스트 레시피를 배워둬서 다행이다.

 리버 페이스트를 만들 때마다 반드시 유유코를 떠올렸다.

 냉장고 속에는 자투리 채소가 뒤섞여 있다. 자투리 채소라고는 해도 양배추는 한 통 온전히 남아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양배추를 좋아하지 않았따. 특히 된장국에 든 양배추는 한 통 온전히 남아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양배추를 좋아하지 않았따. 특히 된장국에 든 양배추가 싫었다. 양배추 때문에 된장국에서 묘한 단맛이 났으니깐. 하지만 옛말부터 양배추는 저렴했다. 양배추 된장국에 양배추 볶음을 먹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저녁 베뉴가 가지 된장국에 가지 된장 볶음일 때도 있었다.) 크로켓이나 돈가스에 곁들인 채 썬 양배추를 먹을 때면 양배추가 입안을 와삭와삭 찌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가스 소스를 뿌린 채 썬 양배추가 맛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도 양배추를 먹는 편이 몸에 좋겠지. 라는 생각에 사두긴 한다. 아침 식사로 콘비프에 채 썬 양배추를 볶아 먹을 때도 있지만, 콘비프는 감자랑 볶는 게 맛있다. 양배추는 베이컨, 버섯과 먹거나 다진 고기와 함께 수프를 끓여 먹기도 하는데, 양배추보다는 배추가 더 맛있다. 하지만 냉장고 속에 항상 들어 있는 건 양배추다 나는 양배추를 네 덩어리로 자른 다음, 채 칼로 가늘게 썰었다. 그러다 손톱과 손가락 끝이 잘려서 피가 났다. 손가락이 터무니없이 아파서 쳐다봤더니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아차차 서툴러 반창고를 붙였다. 잘린 손톱과 피부는 양배추 속에 파묻혔다. 나는 왜 샀는지 기억에 없는 빨간 파프리카를 채 썬 다음 노란 파브리카도 썰어넣었다. 섞었더니 아름다웠다. 그러고는 하나 남으 오이도 마저 썰었다. 피망도 두 개 썰어 넣었다. 나는 아침상에 빨간 파프리카니 노란 파프리카니 허세 부리며 접시에다 차려내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화가 난다. 새로운 것만 좋아하는 인간들 같으니 전후(제 2차 세계 대전)땐 당신들도 양배추 단맛 나는 된장국을 먹었을 텐데, 가난했던 관거를 잊어선 안된다고! 특히나 방울토마토 옆 파슬리 따위를 얹는 사람을 보면 '그런 얄팍한 장식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그러니깐 루이뷔통이나 셀린이니 사는 거라고!' 하며 관계없는 일까지 끌어들인다. 하지만 이런 내가 말하는 것이다. "우와, 예뻐라. 호텔 음식 같아." 호텔 조식은 따분하다.



장안동 아빠방(호빠)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이력 (OlO.9440.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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