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 4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 4

 테이블 위에 반쯤 마른 귤이 굴러다닌다. 바구니 속에 마른 귤이 네 개 정도 들어 있다. 전부 반으로 잘라 귤 착즙기에 넣고 윙윙 돌렸다. 이 귤 착즙기는 어느 집에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몸이 불편한 친구가 한 손으로도 귤 주스를 만들 수 있는 착즙기라면서, 장애인에게 편리한 물건은 일반인에게도 유용하다며 준 것이다. 감귤류만 넣을 수 있다. 그 친구에 받은 것은 작업실에 두고 왔는데, 도쿄로 이사 왔을 때 또 다른 친구가 필요한 것 없냐기에 내 돈으로는 아까워서 못 사는 귤 착즙기를 사달라고 했다. 얼마 후 택배로 착즙기가 도착했다. 나는 기뻐서 박스를 북북 뜯은 다음 부엌 창가에 두러 갔다가 싱크대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창가에는 이미 완전히 똑같은 새 착즙기가 있었따. 사둔 것을 홀랑 잊고 있었따. 적어도 두달 동안 매일매일. 하루에 몇 번씩 봤으면서, 머리털이 쭈볐섰다.
 냉장고 속에 설거지한 커피 잔이 두 개 들어 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서 얼마 후 냉장고를 열었더니 설거지한 절구와 절굿공이가 들어 있었다. 그때도 올 것이 왔따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은 그 이상이다.
 나는 선채로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다. 친구에게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조차 내 머리는 약삭빠르게 돌아갔다. 눈물이 나는 동안 친구에게 사과하자, 나는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있잖아, 흑....." ".....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뭘, 괜찮아. 난 집 안에서 부엌칼 잃어버렸는데 아직 못 찾았어. 근데 언제 샀어?" "기억이 안 나." "너 토스터랑 냄비랑 자질구레한 부엌 용품 한꺼번에 산 적 있잖아." "응." "그런 건 원래 세세하게 기억이 안나는 법이야." "....." "괜찮아." "미안해." "괜찮다니까. 뭐야. 큰 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좋은 사람이다. 그 귤 착즙기로 만든 귤 주스를 마시면서 <뉴스 스테이션>을 보았따. 그나저나 아나운서 구메 히로시는 매일같이 공들여 고른 듯한 양복을 입는다. 구메 히로시는 자기 머리가 좋다는 사실과 양복이 어울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게 티가 난다. 졸리지도 않은데 잘 준비를 마쳤다.
 아침에 읽다 만 책을 읽었따.
 오늘 아침 커피숍에서 본 할머니들. 저녁은 무얼 먹고 자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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