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좋은 일 - part 1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아무래도 좋은 일 - part 1

 토토코 씨가 설음식을 함께 만들자고 한 날이 오늘이었다.

 토토코 씨는 엄청나게 활달하고 몹시 키가 큰 여자다. 요전에 치매 걸린 엄마한테 함께 갔더니 엄마가 "이분은 남편이야?"라고 물었다. 토토코 씨 어머니도 치매가 시작되어서 실버타운을 견학하러 간 것이다. 언젠가 토토 씨와 함께 차에 탔는데, 아들 친구가 아들에게 "너희 엄마 남자 생겼더라" 하고 이른 적도 있다.

 나는 토토코 씨가 다카라즈카(여성으로만 구성된 가극단)에 남자 역할로 들어갔다면 대스타가 되었으리라고 항상 생각한다.

 몸이 가벼운 토토코 씨는 약속 시간을 어기는 법이 없다. 

 긴톤(강남콩과 고구마를 삶아 으깨어 밤 따위를 넣은 음식)과 다시마말이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에 벌떡 일어났다. 벌떡 일어나서 신경 안정제를 한 알 더 먹었다. 나는 약으로 조종되는 인형이었다.

 토토코 씨는 10시에 왔다. 나고야의 시어머니가 매년 설에 보내주신다는 대구포와 토란 찜. 가다랑어 조림을 반찬통에 넣어 가지고 왔다.

 시어머니는 아흔넷이란다.

 "아흔넷이라니까. 대단하지?" "아흔넷이라고? 대단하네" 하며 주거니 받거니 했다. 70대 후반에 우리 엄마는 이미 어엿한 치매 환자였다. 토토코 씨네 시어머니랑 우리 엄마가 살아온 같은 스무 해를 살아도 어쩔 수 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설음식을 만든 것은 언제였을까.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고구마를 조리는지 찌는지로 우리 집과 토토코 씨네 요리법이 갈렸다. 조리기로 했따.

 작년에는 긴톤 때문에 큰 소동이 일었다.

 지난해 기타카루이자와 사사코 씨랑 설음식을 만들었다.

 나는 시중에 파는 샛노랗고 번지르르한 긴톤은 왠지 천박한 느낌이 들어서 우리 엄마 방식대로 순박한 고구마처럼 만들려고 했다. 고구마를 치자와 함께 삶아서 체에다 밭치고 있자니 사사코 씨가 "흠, 흐음"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시했더니 "흐음, 흠"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시했더니 "흐음, 흠" 하고 끈질기게 머리를 흔들었다.

 "좀 더 노란빛이 돌아야 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사코 씨는 치자를 꺼내서 찧고 으깨어 즙을 짜내고 있었다.

 내버려뒀더니, 사사코 씨는 치자즙을 고구마에 넣어 섞었다.

 내버려뒀더니, 긴톤은 노랗다기보다 갈색으로 변했다.

 내버려뒀더니, 혼자서 "음, 이제 됐어"하며 만족스러워했다. 나는 "으음" 하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좀 과하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사코 씨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아닌 듯해서 나는 요리에서 손을 뗐다.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지나치게 많았지만 사사코 씨에게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 지나치게 많다. 사람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십수 년 전에는 내게 랩 크키랑 자르는 방법. 랩 상자 뚜껑 닫는 방법을 지적했다. 알 게 뭐람.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너랑은 같이 못 살겠다." 사사코 씨는 요즘도 그 일을 들추며 당시에 몹시 창처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엉덩이 닦는 법까지 지적했다. 비데를 쓸 때 물을 틀기 전에 휴지로 한번 닦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뭐라고? 휴지로 안 닦아도 된다는 게 비데의 장점이잖아." "아니야. 휴지로 안 닦으면 노즐에 오물이 튄다니깐. 청소할 때 보면 확실해." "넌 그럼 먼저 닦아?" "물론이지. 더러워지는 정도가 완전히 다르다고."

 긴톤을 만든 날로부터 반년이나 지난 뒤 사사코 씨는 말했다. "그땐 치자가 좀 많이 들어갔지." 반성도 상당히 잘 하는 편이고 자기혐오에도 곧잘 빠진다. 작년에는 내가 요리에서 손을 뗀 뒤에도 우리 집 부엌에서 여자 셋이 옥신각신 입씨름을 해가며 요리를 만들었다. 나는 그중 유일하게 젊은 축이었던 요요코와 함께 <홍백 가요 대전>(매년 12월 31일 밤에 NHK에서 방송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보았다.

 "사노 씨랑 요요코는 찬합에 음식 넣는 거 맡아줘!"

 "네에."

 나와 요요코는 같은 미대를 나왔는데 나이는 내가 서른이나 더 많다. "둘 다 예쁘게 넣을 수 있지? 미대 출신이니까." 사사코 씨가 말했지만, 미대에서 설음식 넣는 방법 따윈 가르치지 않는다.

 밖은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찬합 칸막이로 알루미늄포일을 쓰려고 했더니 사사코 씨가 참견했다. "으음, 역시 엽란이 좋겠어." "아, 아라이 씨는 농사를 지으니까 있을지도 몰라." "내가 전화로 물어봤더니 아라이씨는 "없어. 여긴 고도가 높아서 대나무도 안 나는 걸. 엽란은 못 키워"라고 대답했다. "여기선 엽란이 안 자란대."

 알루미늄포일을 접으려는 찰나에 요요코는 사족을 달았다. "아까 보니까 사토 아저씨네 마리 아주머니가 엽란 자르고 있던데요." 낮에 요요코랑 둘이 사토네 잡에 가서 산더미 같은 어묵에 어제 만든 다시마말이 떡을 가져다 주고 귤을 잔뜩 받아 왔던 것이다. 사토네 집은 산을 따라 18킬로미터나 내려가야 한다.

 "꼭 가야 돼?" 

 "포일로 해도 상관없어." 

 "길이 위험하잖아."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여러사람이 입을 모아 알루미늄포일로 괜찮다는데도 사사코씨는 "엽란으로 해야 돼"라며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요요코를 데리고 차에 탔다.

 엄청난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홍백 가요 대전>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아서 이제 곧 엔카 가스 고바야시 사치코가 등장할 참이었다.

 운전은 요요코에게 맡겼다. "무섭네요." 할머니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젊은 여자였떤 요요코는 겁에 질려 있었다. 눈 때문에 겁이 난 게 아니다. 사사코 씨 때문에 겁이 난 것이다. 폭설로 산길에 차가 한 대도 없는 섣달그믐이었다.

 "무서워요." 요요코는 40분 내내 무섭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따. 눈은 차 유리창 중심에서 주변으로 퍼져나가듯 세차게 내렸다.

 "사사코 아주머닌 제가 나이도 어린데 요리를 안 도와드려서 일부러 그러시는 거 아닐까요?"

 "신경 쓰지마. 완벽한 인간은 없는걸. 근데 눈 진짜 많이 온다."

 사토네 집에 도착한 것은 10시 20분이 지나서였다. 유리창을 두드렸다. 사토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따. 마리가 

 "어찌된거야?" 라며 뛰어나왔따. 우리는 쿵쾅쿵쾅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 있었어?" 사토도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엽란 좀 줘." 사토는 <신혼부부 어서 와요!>의 사회자 가쓰라 산시처럼 바닥을 구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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