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는 기세라는 게 있다 - part 2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요리에는 기세라는 게 있다 - part 2

 일너나서 차를 끓이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배가 하나도 안고프다. 텔레비전에서는 요리 방송이 나오고 있다. 몸집이 큰 외국인 여자가 등장한다. 미인이다. 이 언니의 요리는 거침없다. 부엌 전체를 활달하게 돌아다니면서 손짓 몸짓 섞어가며 대량의 샐러드를 만든다.
 짙푸른 푸성귀를 대강 씻은 듯 다음 손에 쥐고 휙휙 물기를 털어낸다.
 물방울이 부엌에 사방팔방 흩날린다. 여자는 카메라를 향해 뭐라고 말하면서, 손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커다란 볼에 대고 푸성귀를 거칠게 팍팍 뜯었다. 모든 재료를 실로 대범하게 자르고 잇달아 볼에 처넣었다. 소스를 만들 때도 마늘을 절구에 넣고 있는 힘껏 빻았다. 식초도 오일도 마음 가는 대로 뿌리고, 마지막에 치즈를 쓱쓱 갈아서 드레싱에 넣었다. 양손으로 푸성귀를 퍼 올리듯 섞고 드레싱을 휙휙 뿌려 마구 뒤섞은 다음 "자, 완성되었어요. 정말로 맛있답니다!" 하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생긋 웃었따. 그런데 그 샐러드가 정말로 맛있어 보였다. 그렇다. 요리에는 기세라는 게 있따. 음, 마음에 든다. 나는 그 대범함에 마음이 이끌렸다. 다이내믹하고 서글서글한 맛이 상상된다. 내일도 봐야지 왠지 어떤 요리든 손쉽게 만들 것 같다. 일본인은 이 언니에 비하면 너무 진중하다. 
 예전에 본 요리 방송에서, 그런 방송이 하도 많아서 어떤 프로였는지 까먹었지만, 보다가 토할 것 같은 음식을 만든 것 같다. 일본인은 이 언니에 비하면 너무 진중하다.
 예전에 본 요리 방송에서, 그런 방송이 하도 많아서 어떤 프로였는지는 까먹었지만, 보다가 토할 것 같은 음식을 만든 적이 있다.
 꽁치 오렌지 주스 영양밥이라는 요리였다.
 물 대신 사각 종이 팩에 든 오렌지 주스를 콸콸 붓고, 꽁치 한 마리를 넣어 전기밥손 스위치를 켠다. 완성된 오렌지색 밥 위에 꽁치 살을 발라내어 섞는다. 맛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속이 메슥거린다. 아, 메슥거린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얼마나 끔찍한 요리인지 어디 한번 먹어나 보자고.
 꽁치와 오렌지 주스를 사 와서 만들어보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맛있었다. 완전히 동남아시아 음식 맛이 났다.
 이야, 맛있다. 밥이 달착지근하면서도 시큼해서 꽁치와 궁합이 딱 맞았다. 밥 위에 고수를 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았따. 다음번에 만들 때는 고수도 넣어 친구들한테 대접했따. 모두들 맛있게 먹었따. 그렇게 메슥거리는 방송을 보고 실제로 만들어본 사람은 전국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매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나는 원래 꽁치 영양밥을 아버지 고향의 조리법대로 만든다.
 생물 꽁치와 마늘잎을 넣고 밥을 짓는 게 다인 요리다. 밥은 간장이 들어가 갈색이 감돌고, 갓 지은 후 꽁치 머리를 들면 살과 내장이 깨끗하게 떨어진다. 머리와 꼬리 사이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꽁치 뼈.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꽁치 머리와 꼬리를 젓가락으로 들어 올릴 때마다 놀란 토끼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엄마는 내장을 감싼 잔뼈를 젓가락으로 발라냈다. 그 시절 이후 나는 마늘잎을 본 적이 없다. 마늘 잎에는 수선화 잎을 걸쭉하게 만 것 같은 줄기가 붙어 있다.
 숨이 죽은 마늘잎과 꽁치를 섞으면 마늘 향과 비슷하면서도 좀 더 부드러운 잎사귀의 향기가 난다.
 마늘은 앞마당 밭에서 키웠다.
 도쿄에서 만들 때는 생강이나 우엉을 넣기도 했지만, 그렇게 만든 밥은 짝퉁 꽁치 영양밥이다.
 구운 은어가 남으면 밥 지을 때 함께 넣었다. 레몬을 뿌리면 맛있었다.

 배가 안 고파서 냉동해둔 바나나와 우유를 믹서에 윙윙 돌려 마셨다. 냉동 바나나를 짠 랩에 벗겨내면서 아아, 또 쓰레기가 나왔구나 싶어 토토코 씨에게 면목이 없어졌따. 돈이 다 떨어져서 은행에 가야 한다. 꾸물꾸물 옷을 갈아입었다.
 어기적거리며 밖으로 나섰다.
 은행에 가자 자동인출기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급하지도 않으면서 안달이 났다. 나보다 아주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기계 앞에서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버튼을 누르고서 한참 바라보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은행 직원을 찾는다. 그러고는 또다시 방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튼을 누른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요전에 계좌 이체를 굼뜨게 했더니 내 뒤의 젊은이가 쯧, 하고 혀를 차며 다른 줄로 옮겨 섰다.
 아, 앞으로 몇 년이나 내 힘으로 돈을 찾을 수 있을까.
 비록 속도는 느릴지언정 혼자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하자. 지폐를 지갑에 넣고 명세서를 보았다. 명세서를 보려면 돋보기안경을 꺼내야만 한다.
 아, 돈은 줄어들기만 한다. 조금이라도 일을 해야겠다.
 교카이도리를 걸으며 의문이 생겼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지갑에 돈을 넣고 다니는데, 모두들 어디서 돈을 조달해 살아가는 걸까. 일해서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한테 빌붙어 살거나 돈을 벌기 위해 일하겠지. 부모의 유산으로 한평생 놀고먹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다. 다들 건강하기도 하지.
 쿄카이도리는 좁은 길이다. 내가 죽어서 길바닥에 가로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나를 넘어 다녀야 할 것이다.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발견했다. 소문의 2인조 할머님들을.
 한 사람은 레이스 양산을 썼는데 양산에 프릴이 겹쳐 있었따.
 다른 한 사람은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에 나오는 로라처럼 에이프런 차림이었따.
 두 사람은 바로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와, 어찌나 운이 좋은지. 그들을 일부러 지나친 다음 자연스레 뒤돌아보려고 꾀하던 찰나. 둘은 거의 동시에 90도로 방향으로 틀어 메밀 국숫집 마루카로 들어가버렸다. 시계를 보니 12시 정각이었다. 나도 그들을 놓칠세라, 탐정도 아니면서 어째서 놓칠세라인지 모르겠지만 뒤를 쫓아 마루카로 들어갔다. 처음 들어가본 마루카는 매우 비좁았고 테이블이 두 개밖에 없는 데다 거의 차서 남은 곳이라고는 두 사람의 앞자리뿐이었다. 오늘은 운이 좋다. "여기 앉아도 될까?"하고 가식적인 목소리로 묻는 나.
 두 공주님은 동시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호, 정면이다!
 두 사람은 종업원을 향해 동시에 고개를 틀며 합창했따.
 "메밀국수"
 이 둘은 매일 12시면 칼같이 이리로 와서 언제나 메밀국수를 먹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걸까?
 나는 허둥지둥 채소 튀김 덮밥을 시켰다. 500엔이라니, 싸잖아?
 두 사람을 느긋하게 관찰할 수 있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세히 보니 한 사람은 가슴까지 오는 앞치마를 덧댄 스커트에 잔잔한 꽃무늬가 빼곡히 들어찬 옷을 입었따. 새하얀 블라우스는 잔주름이 잔뜩 잡혀 있고, 옷깃을 따라 레이스도 달려 있따. 이 사람은 머리도 <초원의 집>의 로라 엄마처럼 둥글게 말아 올렸다.
 다른 한 사람은 단발머리로, 어깨에 프릴이 달린 새하얀 에이프런 드레스 차림이었따. 정말로 로라였따. 일본인으로 환생한 로라가 나이를 먹고 반 백발의 일흔두세이 되어 나란히 앉아 있다.
 두 사람은 거의 말이 없었다. 말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둘사이의 깊은 유대감을 나타내는 듯했다. 눈 깜짝할 새에 조용히 메밀 국수를 다 먹었따. 쌍둥이다. 피를 나눈 쌍둥이가 아니더라도 이 둘은 틀림없는 쌍둥이다.
 눈 깜짝할 새에 조용히 두 사람은 훌쩍 가게를 떠났다. 따라가고 싶었지만 채소 튀김 덮밥이 막 나온 참이었다. 진한 소스를 듬뿍 뿌린, 갓 튀겨낸 튀김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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