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좋은 일 - Part 2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아무래도 좋은 일 - Part 2

 "엽란은 아까 자른 게 마지막이야." 
 사토가 말했다. 
 "뭐라고?"
 "여기선 잘 안 자라. 도쿄에서 가져다 옮겨 심었는데 점점 작아지더라고. 세 주기짜리 작은 거라면 아직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토가 눈발을 헤치며 밖으로 나서기에 따라 나갔다. 엽란이 있는 곳은 골판지로 사방을 막아두었다. 정말로 조그만 엽란이 세 줄기 남아 있었다. 
 "그걸 자르고 나면 이제 허허벌판이네."
 "어쩔 수 없지."
 사토는 웃으며 전부 잘라 주었다.
 "차라도 마시고 가.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마리가 차를 끌이기 시작했지만, 요요코가
 "아주머니 얼른 가요. 무서워요. 빨리가요."
 라고 자꾸만 재촉하는 통에 또다시 눈이 푹푹 내리는 산길을 굼벵이 걸음으로 40분이나 걸려 돌아왔다. 아. 도쿄 집에는 차고 넘칠 정도로 엽락이 무성한데. 점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엽란을 잘라 칸막이로 만들었더니 정말로 아름다운 찬합이 완성되었다.
 "거봐, 역시 엽란이라니까."
 사사코씨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만족스러워했다.
 "역시 은박지보다는 엽란이 좋네."
 나도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홍백 가요 대전>은 고바야시 사치코도 미카와 겐이치도 전부 놓쳤다(홍팀 고바야시 사치코와 백팀 미카와 겐이치의 화려한 무대의상 대결은 이 프로그램의 명물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엽란 사건은 잊히지 않는 풍경과 추억으로 남았다.
 만약 알루미늄포일로 끝냈더라면 그해 섣달그믐의 눈 내린 산길도 못 봤을 테고. 요요코와 내가 적진을 탐색하는 병사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엽란, 엽란"
 하며 임무에 목숨 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토도 가쓰라 산시처럼 의자에서 굴러떨어지며 웃을 일도 없었겠지.
 앞으로 평생 동안 엽란을 볼 때마다 폭설이 내린 산길이 떠 오를 테지.
 어린 시절에 보낸 섣달 그믐 중 확실히 기억나는 날은 하루 밖에 없다.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저녁때였따. 싯포쿠 요리(중국요리가 일본에 들어와 변형된 연회 요리의 일종)가 차려진 원탁 위에는 조림을 비롯한 각종 요리가 즐비했고, 한가운데는 커다란 소쿠리에 메밀국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어쨌거나 자식이 넷이나 있는 집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부엌에 있었고 아버지는 붉으락푸르락하던 차였다. 섣달 그믐에 어른들은 붉으락푸르락하고 아이들은 주뼛주뼛했다. 갑자기 아버지가 원탁을 뒤집어엎었다. 상 위의 음식이 사방으로 떨어졌다. 상이 엎어지던 순간의 기억은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다다미 위헤 흩뿌려진 당근이랑 잔멸치를 줍고 있었다. 음식을 어떻게 수습해서 다시 상을 차렸는지. 어떤 섣달 그믐 저녁을 보냈는지 생각이 안 난다.
 다만 소동이 일어난 다음 희미하게 웃음 짓던 아버지 모습만 기억난다.
 아버지는 평소에 언짢아할 때는 많았지만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내 머릿속 아버지의 웃는 얼굴 가운데 그날의 엷은 웃음처럼 선명한 모습은 없다. 여하튼 텔레비전이 없었던 우리 집에서는 식사를 하면서 눈 돌릴 데가 없었따. 평상시 아버지는 자식들의 잡담을 금했고, 식사 시간에는 본인 혼자서 설교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때는 설교할 분위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묵묵히 흩어진 메밀국수를 먹었다. 내 인생 가운데 가장 비참한 식사였다.
 옹색한 연립주택이어서, 나와 남동생은 식사용 원탁을 치우고 나서 생긴 다다미 네 장 반 남짓한 공간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잤따.
 설날 아침. 눈을 뜨자 천장이 보였다.
 천장에 메밀국수가 두세 가닥 달라붙어 늘어져 있었다. 어린애는 솔직하다. 나는 차마 소리 내어 웃지는 못했지만 마음껏 웃고 싶었다.
 그날 이후 섣달그믐이 돌아올 때마다 천장의 메밀국수가 생각나서 웃음이 터졌다. 이따금씩 바닥을 구르며 웃고 싶어진다.
 어린애였던 나는 그때, 가장 비참한 것 속에서 의심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나저나 메밀국수 두세 가닥은 어떻게 천장까지 날아간 걸까?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고구마를 체에 밭치고 있던 와중에 토토코 씨가 물었다. 
 "어릴 때 새해가 되면 새 속옷이 머리캍에 놓여 있지 않았어?"
 "맞아. 있었어. 가장 좋은 옷도 개켜져 있었지."
 "왠지 새해가 온 실감이 났는데."
 "1년에 속옷을 한 벌밖에 못 산걸까."
 옛날 엄마들은 대단하다는 이야기로 입을 모았다.
 예전에 설이 훨씬 설다웠다. 공기까지 새해 느낌으로 바뀌어 있었다. 언제부터 어제와 다름없는 설이 되어버린 것일까.
 내가 만든 다시말이는 맛있따는 평판이 자자하다. 언젠가 참치 덩어리를 껍질째 선물 받아서 회를 뜨자 거무스름한 살점과 지방이 많은 홀쭉한 부위가 남았다. 남은 부분을 다시마말이 속에 넣었더니 맛았었다. 이듬해에는 일부러 참치 뱃살을 사는 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다음부터는 저렴한 냉동살코기를 샀다. 오늘은 토토코 씨와 방어 반 마리르 사 넣었다. 맛은 보장할 수 없다. 사 온 박말랭이를 꺼내놓고 보니 박말랭이가 아니었다. 무 말랭이었다.
 헷갈리게 무말랭이 같은 건 만들지도 팔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서둘러 다시 나가 박말랭이를 사 왔다. 돌아서 미끌미끌한 다시마에 박말랭이를  말던 중 토토코 씨가 물었다.
 "어릴 때 귤이랑 우무 넣은 디저트 같은 거 없었어?"
 "있었어. 그거 맛은 별론데 예쁘긴 했지."
 "먹으면 기분이 좋았는데."
 자세히 전혀 다른 음식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토토코 씨는 귤을 도려내고, 굴즙과 우무즙을 섞어서 귤껍질 속에 넣은 다음 눈 속에 파묻어 두었따고 한다. 아침이 되면 귤껍질 안이 셔벗처럼 변해있었단. 홋카이도여서 가능한 일이다. 왠지 고급스럽다.
 우리 집에서는 사각형 통에 단맛을 낸 우무즙을 흘려 넣고 둥글게 썬 귤을 주르르 올린 뒤 사각형으로 잘라 먹었다.
 또다시 옛날 엄마들은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계쩔마다 제철 음식을 궁리해서 만들었던 것이다.
 홋카이도에서도 시즈오카에서도 같은 재료다.
 토토코 씨와 다시마말이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귤 우무를 떠올리지 못했겠지.
 토토코 씨도 나도 일을 대충 끝내는 성미여서, 사사코 씨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걸로 됐나?"
 "응 됐어."
 더 없이 평화롭게 요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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