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는 기세라는 게 있다. - part 3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요리에는 기세라는 게 있다. - part 3

 나는 감탄하며 국숫집을 나왔다. 내일도 12시에 오면 초원의 할머님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와중에, 반대편에서 내 동년배로 보이는 튼실한 체격의 할머가 좁은 길 한복판을 자전거를 타고 맹렬히 달려왔다. 길이 좋으니 나도 한복판을 걷고 있다. 원래 이 길은 자전거로 다니면 안된다. 내가 왼쪽으로 피하자 할머니도 왼쪽으로 피하고, 어이쿠 하며 오른쪽으로 피하자 할머니도 오른쪽으로 피하며 갑자기 소리를 꽥 질렀다. "뭘 그리 꾸물대는 거얏! 위험하게, 원참. 멍청히 있지 말라고! 쯧." 그 엄청난 성량과 박력에 기가 죽은 나는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해버렸다. 할머니는 분연히 아까와 마찬가지로 맹렬한 속도로 사라졌다.
 저녁때 마트의 생선 코너에 갔다. 세 마리 200엔인 꽁치가 번쩍번쩍 맛있어 보였다. 혼자서 세 마리를 어쩔 셈이람. 하지만 200엔인데. 은색으로 빛나는 꽁치 배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꽁치 주세요." 나는 꽁치를 샀따. 도미 토막도 팔고 있었다. 도미 영양밥이 먹고 싶었다. "거기 있는 도미도 주세요." 한 토막에 500엔이었다. 비싸다. 한 토막을 샀다.
 꽁치를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하다가 전부 토막 친 다음 냄비에 다시마를 깔고 그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마늘 한 통을 모조리 까 넣고, 간장과 맛술을 같은 분량으로 부어 약한 물로 조렸다. 어떤 맛이 날지 모르겠다.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뚜껑을 열어 보니 진한 갈색으로 변해 있었따.
 도미 영양밥을 전기밥솥으로 만들려면 최소한 2인분은 지어야 해서. 1인동 뚝배기에 쌀을 한 홉 넣고 간을 맞춘 다음 도미 한 토막을 얹고 불에 올리자 20분 만에 완성되었따. 섞어 보니 누룽지도 적당하게 눌어붙어 있었따. 어릴 적 엄마는 밥통에 밥을 옮기고 남은 누룽지로 종종 주먹밥을 만들어 주었다. 손이 거뭇거뭇해질 정도로 새까맣게 탄 주먹밥도 먹었다. 딱딱해서 이가 부러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 주먹밥은 먹고 나면 턱이 바들바들 떨렸다.
 점심때 채소 튀김 덮밥을 먹었는데도 또 고구마랑 가지 튀김을 만들었다. 냉장고에 그것밖에 없었따. 조글조글한 파드득 나물을 데쳤다 먹다 남은 무절이 등을 쟁반에 받쳐 들고 어디서 밥을 먹었는가 하면, 멀쩡한 식탁을 놔두고 텔레비전 앞 소파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먹었따. 이제 영양밥은 1인용 뚝배기로만 지어야겠다.

장안동 아빠방(호빠) OlO.9440.0540 K대 법대 출신 성훈 실장

 내 가족은 텔레비전임이 틀림없다.
 채널을 휙휙 돌려보니 예능 프로그램뿐이었다. 일본은 요시모토(인기 코미디언이 대거 소속된 연예 기획사)에 점령당했다.
 맥아더 장군의 일본 점령 때보다 더 깊숙이 점령 당했따. 그런데 저치들은 어째서 항상 저리도 흥분해 있는 걸까. 면전에다 대고 말해주고 싶다. "이봐 당신들, 좀 조용히 하라고,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자기네끼리만 아는 얘기나 하고 말이지, 전국민이 다 당신네 패거리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아니, 이미 착각하는 것 같네. 이 나라는 대체 어찌 되려나." 다시 채널을 휙휙 돌려 위성방송으로 미국 뉴스를 틀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랐다.
 아나운서인지 캐스터인지. 서른쯤 되어 보이는 여자의 화장에 경악한 것이다. 눈 주변을 시커멓게 칠해서 검은자가 흰자 한 가운데 둥둥 떠 있었따. 인간의 흰자위란 원래 저렇게 넓은 것일까. 밥을 다 먹고 나면 나도 아이섀도로 눈가를 새까맣게 칠해봐야겠다. 여하튼 정말로 짙은 화장이다.
 요요코한테서 전화가 왔따. 쌍둥이(?) 공주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요요코가 "아, 제 친구도 그 동네에 사는데 진짜 유명한 아줌마 공주님이 있대요. 같은 사람일까요? 다들 그 사람을 메리 씨라고 부른다나요. 엄청 뚱뚱한데, 어린애처럼 분홍색 빨색 옷차림에 동그랗고 새빨갛게 볼을 칠하고 자전거로 온종일 달린다더라고요. 그 사람은 아니죠?" 메리 씨라니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한번 보고 싶다. 그나저나 '메리'는 좋은 이름이다.
 자기 전에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교카이도리의 자전거 할머니 때문이다. 그런 좁은 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나쁜 거잖아. 부딪친 당신이 사과해야 맞잖아. 멍청히 있지 말라니, 누가 누구 보고 할 소리야. 어째서 나는 되갚아주지 않은걸까. "죄송합니다"라니. 아, 한마디 해줬어야 하는 건데. 이렇게 쏘아붙여야 했는데. 아니, 좀 더 심한 말로 한 방 먹여야 했는데. 분한 마음을 품고 잠들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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